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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net view/T Horror

화장실

화장실







이건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내 비밀 같은 거야.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왠지 이번에야 말로 아니, 지금은 꼭 말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럼 시작할게.

때는 2007년 내가 ‘스무 살’일 때였어. 처음 느껴보는 설렘이랄까?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 둘 접해가면서 그야말로 한창 그 나이를 즐길 때였지.
대학교 1학년 때는 원래 그러는 거라는 선배들의 말도 있었지만, 딱히 그런 선배들의 말이 없었어도 난 아마 미친 듯이 놀았을 거야. 당연하잖아? 인생에 단 한번 뿐인 스무 살인데.
그렇게 1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어. 소개팅이다 헌팅이다 하면서 여자 친구도 생겼고 같은 시기에 친했던 친구 녀석 역시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우리는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어. 그럼 가장 중요한건 뭐겠어? 휴가비 아니겠어? 당장 용돈이 바닥나 버린 나는 차마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순 없었고, 어쩔 수없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어. 그렇잖아? 스무 살씩이나 처먹고 용돈 받는 것도 쪽팔린데, 더 달라는 게 말이 돼? 그것도 휴가 가겠다고? 내가 무슨 등골브레이커도 아닌데 말이야. 그래서 난 휴가날짜를 좀 미루고 딱 한 달만 바짝 일할 수 있는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어. 그나마 다행인 건 친구 녀석도 나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거지. 그렇게 얼마나 검색했을까? 몇 십분이 몇 시간이 되고, 몇 시간이 며칠이 되도록 웹 사이트를 뒤지던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어. 아무리 이곳저곳 둘러봐도 마땅한 알바자리가 없는 거야. 역시 대학생 방학크리가 미치는 영향이 크긴 크더라고. 그러던 중 하늘이 도운 것일까? 난 당장 바로 일할 수 있다는 코멘트가 달린 편의점 구인 공고를 간신히 하나 발견할 수 있었어. 정말이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대학교 수시 합격했을 때보다 더 기뻤지. 나는 바로 그리로 전화를 걸었어. 그리고 그렇게 내 첫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어.

그곳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 제법 떨어진 주택가의 끝에 위치한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은’ 건물의 편의점이었는데 처음 일을 시작하던 날부터 왠지 모르게 으스스했어. 그 으스스한 느낌은 그래도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고,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경찰서도 하나 있어 밤에 치안은 걱정할 것 없다는 사장님의 말에 더 증폭됐지. 난 물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야. 그래도 야간 아르바이트 치고 시급이 높다는 건 무척 마음에 들었어. 아무튼 첫날은 정말 뭐 하는 것도 없이 지나갔어. 끽해야 포스 익히는 정도? 새벽시간이라 손님도 별로 없었고, 사장님이랑 같이 근무했던 터라 뭐 할 것도 없이 핸드폰만 만지다 끝나버린 것 같더라. 그래서인지 으스스했던 기분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지. 그렇게 며칠이 흐른 어느 날이었어. 이제는 포스를 다루는 것쯤은 물론 웬만한 건 전부 마스터를 한 상태였고, 덕분에 그날이 비로소 혼자 근무하는 내 첫날이었지. 그리고 그날부터 시작됐어. ‘그 일’이….

이 가게에서 가장 불편한 거 하나를 꼽으라면 그건 ‘화장실’이었어. 화장실은 가게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와서 이 가게가 속해있는 건물의 2층까지 올라가야했지. 전체적으로 4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사장님 말로는 건물주가 관리 안한지 몇 개월 되었다는 거야. 그렇다고 버려둔 건 아니고 현재 있는 세입자들 외에 비어있는 층은 그냥 빈 채로 놔두겠다는 심산인 것 같아. 다 세를 주지 않고 썩히는 게 꽤나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자기 꺼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었지.
아무튼 그래서 낮에는 지하1층 공장사람들과 같이 사용했고, 늦은 밤부터는 우리가게 사람만 사용하는 셈이었어. 공장은 저녁 8시 전후로 문을 닫고, 2층부턴 비어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누가 사용하고 말고의 그런 게 아니야. 늦은 밤까지는 그래도 상관없는데, 새벽에는 진짜 도저히 못 가겠는 거야. 나이 스물 먹은 남자새끼가 겁도 오지게 많다고 욕할지도 모르겠는데, 진짜 나름 강심장인 내가 느끼기에도 여기 분위기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으스스했어. 첫날 느꼈던 그 으스스한 이질감이 몇 배는 더 뻥튀기 된 느낌이었지. 새벽시간엔 정말 거리가 한산하거든. 사람은커녕 차들조차 씨가 말라서 주변은 온통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있어. 저만치 멀리 보이는 경찰서 불빛 하나랑 가게 간판이 유일한 빛이었지. 아무튼 그래서 난 절대로 새벽엔 화장실에 가지 않아. 내가 일하는 시간은 밤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진데, 지금껏 첫날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새벽에 화장실에 가지 않았어. 혼자 근무하는 것도 아닌 사장님과 같이 근무를 했는데도 말이야. 그만큼 그곳은 음침하고 무서웠어. 새벽시간에는 그야말로 나를 제외하고 이 건물에 아무도 없는 거잖아? 그 생각이 드니 더 죽겠더라고. 하지만 어쩌겠어? 그날 난 결국 참다못해 새벽 4시가 다 되어서 휴지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어. 별수 없는 선택이었지. 생리현상을 참아 내는 건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다는 거, 겪어본 사람은 다 알 거야. 그렇게 난 가게 문을 잠그고 가게 옆으로 드러난 주택가의 입구. 즉, 출입문이 있는 건물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출입문 앞에 섰지.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개미새끼 한 마리조차 안보이더라. 오로지 유리로 된 출입문에 비친 내 모습만이 나를 마주할 뿐이었지. 난 쓴웃음을 지으며 전자 도어락에 손을 가져가 비밀번호를 입력했어. 그러자 ‘띠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습니다.’ 라는 음성멘트가 흘러나왔어. 정말이지 그날 들었던 그 기계음만큼 기분 나빴던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난 잽싸게 건물 안으로 몸을 들이 밀었어. 순간 싸~ 하게 밀려드는 오싹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어. 왜 있잖아? 갑자기 싸해지는 그런 소름 돋는 기분. 덕분에 내 긴장감의 끈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지. 하지만 항문은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더욱 더 나를 고통스럽게 몰아붙이기 시작했어. 어쩔 수없이 난 앞뒤 가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무작정 2층까지 뛰어 올라갔어. 그리고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변기위에 바지를 내리고 앉는 순간까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어. 그때의 난 아마 제법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 거야. 그렇게 볼일을 다 보고 세면대 앞으로 가 거울을 봤어. 딱히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 그냥 세면대 바로 위에 달려있어서 눈이 갔을 뿐이었어. 이쯤 되면 순간 거울에 나 이외에 무언가가 비춰졌고 그건…! 뭐, 이런 전개가 나올 줄 알았어? 나도 솔직히 그런 마음에 움찔 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긴장감이 조금 풀린 난 손을 씻고 옷 메무새까지 추스르는 대범함까지 보였지. 하지만 화장실을 돌아설 때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왔어. 기다렸다는 듯 날 덮치는 차가운 새벽 공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지. 그제 서야 난 안도의 한 숨을 내쉴 수 있었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괜히 지금까지 겁먹고 있던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 그래도 다시 들어가라고 하면 못 들어갈 것 같았어. 하하.
그만큼 왠지 모르게 건물 내부의 공기는 탁하고 차가웠으니까.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는 사뭇 다른 한층 더 자연적인 차가움이랄까? 아무튼 쉽사리 수긍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어. 매우 꺼림칙한 기분이었지. 난 가게로 돌아와 손님도 없겠다, 창고정리라도 하면서 나쁜 생각을 지우기로 했어. 휴대폰 게임도 지겨웠고, 그렇다고 멍하니 있는 것 보다는 이게 훨씬 적성에 맞았거든. 그렇게 아직까지 밀봉된 채 빛을 보지도 못한 신제품 박스들을 보며 기합을 내지르는 찰나였어. 갑자기 머리 바로 위에서 ‘쿵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어. 그런데 소리는 한번으로 끝이 아니라 일정 간격을 두고 계속 들려왔어. ‘쿵’ 이러다가도 별안간 ‘쿵쿵쿵’ 이러기도 하고 마치 위층에서 누군가 뛰는 것 같은 소리였어. 가뜩이나 조용한 새벽시간이라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지. 더군다나 난 가게안의 음악소리는 전부 줄여놓거든. 창고 정리 중에 음악 소리 때문에 손님이 들어오는 걸 캐치하지 못한 적이 몇 번 있어서 선택한 결론이었지. 그렇기에 가게 안은 냉장고 특유의 ‘우웅’ 하는 미세한 소리 외에는 적막에 가까웠어. 아무튼 소리가 계속 들려오자 난 문득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어. 새벽시간에 이 건물엔 오로지 나만 있는 거잖아? 그런데 대체 누가 위에서 뛰고 있다는 거지? 순식간에 온몸에 닭살이 돋지 뭐야. 근데 소름 돋는 건 그걸로 끝이 아니었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있는 이 창고의 바로 위는 정확히 화장실이 있는 위치였어. 건물2층에 있는 그 화장실 말이야. 방금 내가 다녀온 그 화장실. 하필이면 그 화장실과 이 가게 창고가 있는 위치가 위아래로 일치했던 거야. 등골이 오싹했어. 방금 전 화장실을 갖다 왔다는 게 더더욱 날 소름 돋게 만들더라. 역시 난 별 것도 아닌 일에 겁을 먹는 한심한 인간이 아니었어. 역시 이 건물 위층에는 분명 뭔가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지. 그렇다면 과연 뭐가 있는 것일까? 집 없는 노숙자들이 비어있는 위층에서 생활이라도 하는 걸까? 하지만 문이 잠겨있는데 어떻게 들어갔다는 거야? 비밀번호도 모르는데 말이야. 난 애써 노숙자중 하나가 우연히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이겠거니 생각했어. 그게 그나마 가장 타당하게 느껴졌거든. 그렇게 무서움을 달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소리가 딱 끊기고 조용해졌어. 하지만 안심이 되기보단 더 무서워 졌어. 소리는 딱 끊기기 전까지 점점 작아지고 있었거든. 마치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가는 것 같이 말이야. 난 자연스럽게 창고에 있는 CCTV에 정신을 집중했어. 8개로 분할된 화면 중에는 당연히 건물 출입구가 포함된 화면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화면에 집중해도 누군가가 입구에서 나오지는 않았어. 차라리 누군가 나왔으면 그게 누구든 간에 이렇게 불안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찜찜한 하루가 흘러갔어. 아침이 밝자, 한편으론 그래도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더라. 그날 난 두 번 다시 새벽에 화장실에는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한동안은 철저한 마인드컨트롤이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새벽에 화장실에 갈일은 전혀 생기지 않았어. 여전히 이따금씩 위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지만 난 음악을 틀어놓고 애써 무시하며 시간을 죽였지. 하지만 내가 일을 하게 된지 정확히 20일째 되는 날. 그날은 어이없게도 갑작스럽게 배탈이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또다시 화장실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어. 2일이나 지난 폐기상품을 먹어 배탈이 나게 만든 내 자신을 책망하면서 말이야.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난 얼마 전의 그 날과 마찬가지로 건조한 기계음을 뒤로한 채 음침하고 으슥한 계단을 올라갔어. 정말이지 그때 들어왔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음침하게 느껴졌어. 그렇게 2층에 막 도착했을 때, 난 역시 괜히 들어왔다고 생각했지. 음침함의 정도를 벗어나 그날은 한기까지 느껴지는 거야. 이럴 바에야 차라리 민망함을 무릅쓰고 경찰서 화장실을 이용할 걸 그랬다는 어이없는 생각마저 들었어. 하지만 내 장은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기에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솔직히 이제 와서 똥 싸러 경찰서에 간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잖아? 결국 난 마지못해 화장실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어. 지난번처럼 첫 번째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곤 바지를 내렸지. 이내 생리적인 욕구가 해소될 때의 황홀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똑똑똑’

불현듯 갑작스럽게 들려온 노크소리. 싸늘하게 굳어지는 안면근육. 부드럽게 흘러나오던 똥이 도로 들어가는 순간이었어. 난 마른침을 삼키며 숨을 죽였지. ‘대체 누구지?’ 이런 생각이 들기보다는 그냥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버렸어.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야. 역시 괜히 들어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어. 그런 나를 뒤로하고 매정하게도 노크소리는 또 한 번 정확하게 들려왔어.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재차 알려주려는 의도 같았지.

‘똑똑똑’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어. 사람이면 사람인대로 그게 아니라면 또 그건 그거대로 정말 너무 소름끼치는 시간이었어. 내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올 때 따라 들어왔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었기에 아마도 이 소리를 내는 녀석은 새벽마다 쿵쿵 거리던 녀석이 분명했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왜 있잖아. 그 천천히 뚜벅뚜벅 걷는 발자국 소리. 갑자기 ‘저벅저벅’ 그런 소리가 문 앞에서 흘러 들어오는 거야. 그리더니 이내 끼익하는 옆 칸의 여자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참, 이 화장실은 출입문은 하나로, 내부는 벽 하나를 두고 각각 남 여 칸이 나뉘어져 있는데 경계선인 그 벽의 높이가 그리 높지는 않게 설계 돼있어서 벽이 끝나는 지점과 천정 사이에 제법 넓은 공간이 있었어. 그래서 마음먹고 변기에 올라서면 옆 칸에 누가 있는지 정도는 볼 수가 있지. 물론 상대방이 서있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야. 그래서일까?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벽 위의 공간으로 향했어. 그리고 난 그곳으로 시선을 옮긴 내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어. 그곳엔 누군가의 검은 뒤통수가 있었어. 그리고 그 머리통은 이리저리 좌우로 위태위태하게 움직이고 있었지.

‘스슥 스슥’


마치 가발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처럼 검은 머리칼로 뒤덮인 뒤통수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그 모습과 소리는 섬뜩하기 그지없었어. 더욱 무서웠던 건 180센티미터가 넘는 내가 똑바로 서도 저 공간으로 머리가 보이긴 힘들거든. 그럼 저놈은 대체 얼마나 키가 크다는 거야? 더군다나 난 변기에 앉아있는데 뒤통수가 반 이상 보인다는 게 도저히 사람으로 생각하기가 힘들었어. 키가 많이 컸다거나 변기에 올라가면 보일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그땐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 그렇게 똥을 싸다 말고 그 정체모를 남자인지 여자인지 귀신인지 모를 놈의 뒤통수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놈의 뒤통수에 변화가 전혀 없는 거야. 볼일을 보러 들어온 거라면 변기에 앉아야 되는데 앉으면 머리가 보일수가 없잖아? 서서 소변을 보러 들어온 남자라면 더더욱 말이 안되는 게 밖에 소변기는 따로 있거든? 그래, 백 번 양보해서 들어와서 소변을 볼 수도 있지만 소변 소리는 전혀 안 들렸다고! 즉, 놈은 그냥 뒤 돌아서서 계속 좌우로 머리만 왔다갔다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어. 마치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말이야. 세상에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이런 새벽 시간에 남의 건물 화장실에 들어와 춤을 추겠어? 그때 난 완전 거의 패닉 상태였어. 그 순간 놈의 머리통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췄어. 그러더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놈의 뒤통수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하는 거야. 정말 울고 싶었어.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고, 놈의 머리가 절반쯤 돌아가 놈의 옆얼굴이 보이려는 그때, 난 혼신의 힘을 다해 화장실을 뛰쳐나갔어. 왠지 모르게 절대로 저놈의 얼굴과 마주치는 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 굳어있던 몸을 억지로 움직이게 만들었지. 엉덩이를 닦지도 못한 찝찝함 보다는 살았다는 해방감이 더 컸던 순간이었어. 걱정하지 마. 그날 입었던 속옷과 바지는 버렸으니까. 우여곡절 끝에 가게로 돌아온 난 창고로 들어가 CCTV를 주시했어. 하지만 역시나 그놈은 몇 십 분이 지나도 밖으로 나오질 않았어. 하기야 귀신이라면 안 찍히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였지. 하지만 그 시간의 마지막 남은 내 이성은 애써 그 존재가 사람이라며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었지. 그렇게 간간히 들어오는 손님을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화장실에서 벗어난 지 대충 한 시간이 넘어 갔을 때, 나는 겨우 공포의 도가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안정을 되찾았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창고 위층. 그래 화장실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또 듣고 말았지.

‘쿵쿵쿵’
‘쿵’

정말 온몸에 전율이 일었어. 그것은 아직도 나가지 않고 건물 안에 그것도 화장실 안에 있었던 거야. 그것과 아직까지도 같은 건물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머리칼이 있는 대로 곤두서기 시작했어. 그 뒤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기억이 안나. ‘쿵쿵쿵’ 하다가도 미친 듯이 ‘쿵쿵쿵쿵쿵’ 하는 그것의 소리에 정신이 완전히 나갔던 모양이야.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멍하니 카운터에서 담배를 팔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지. 이날이 인수인계에서 마이너스 57000원이 났던 날이었어. 그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단 거지. 난 교대를 하고나서 이번에야말로 진지하게 이 사실을 사장님께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지난번에도 말했긴 했지만 ‘네가 잘못 들었을 거야.’ 라고 핀잔을 주었었기 때문에 이번엔 정말 제대로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지. 그리고 생각은 행동으로 이루어졌어. 내 진지한 억양에 조금 놀라셨는지 사장님은 작게 ‘알아보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으셨지. 난 집으로 돌아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두병이나 비워버렸어. 도저히 맨 정신으론 그 녀석이 떠올라 잠을 못자겠더라고. 하지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잠은 오지 않았어.

그렇게 뜬 눈으로 지새던 시간은 어느덧 흘러 출근할 시간이 되었고, 난 꾸벅꾸벅 졸다말고 기계적으로 일어나 밖으로 나왔어. 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 4통이 찍혀있었는데, 4통 다 사장님이더라. 그 중 1통도 여자 친구에게서 온 게 없다는 게 조금 공포였지. 난 씁쓸한 얼굴로 어차피 지금 가서 인수인계해야 하는 것이기에 사장님께 따로 전화를 걸진 않았어.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얼마 되지 않아 난 가게에 도착했지. 가게 앞에는 경찰차 두 대와 앰뷸런스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그 주위로 술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 난 확실히 내가 보았던 그 무엇인가와 분명 관련이 있을 거라 직감했지. 난 그들을 지나쳐 문을 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장님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느냐고’ 내게 눈을 흘겼어. 그리곤 내가 오기 전부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옆에 아저씨 한분을 소개해주셨지. 한 눈에 보기에도 형사 같았고, 역시 내 감은 틀리지 않았어.
내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지금까지 기다렸다더라고. 아무래도 내가 재차 했던 이야기 때문에 사장님이 신고를 한 모양이었어. 사장님도 내심 불안했던 거지. ‘이럴 거면 진즉 좀 신고하지’라고 속으로 막 투덜대고 있을 때, 형사 아저씨가 다가와 입을 열었는데, 아저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어. 그건 다름 아닌 살인사건이었거든. 생각이나 해봤겠어? 뉴스에서나 접해봤지 막상 내 주변에서 살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꽤나 충격적이더라고. 놀라는 내 표정을 본 아저씨는 험한 인상과 사뭇 대조적인 웃음을 짓더니 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들었어.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느냐, 언제 처음 봤느냐, 무슨 옷을 입고 있었나, 등의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 시작됐지. 난 내가 경험했던 그대로 답했어.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아저씨의 눈빛이 흔들리는 거야. 마치 내 말을 못 믿는 것 같은 눈치였지. 썩 기분이 좋지는 않더라고. 사람이 진지하게 이야기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얼마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20초? 30초? 대충 그 정도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을 때 형사 아저씨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어. 그리고 그 내용은 이전의 충격보다는 조금 더 높은 수위의 충격을 내게 안겨주었지. 내가 봤다고 추정되는 그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최소 3개월 전에 살해당했다고 말이야. 이 건물에 전자 도어락이 설치되기 전에만 해도 이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은 많았데. 노숙자부터 시작해서 근처에 큰 정신병원이 하나 있는 관계로 정신이상자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었던 것 같아. 그들은 위층에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을 알고 매일같이 그곳에서 대놓고 성관계를 맺는다거나 술을 마시고 본드를 하고….정말 별 해괴한 짓들을 다 했다는 거야. 나중에 그걸 알게 된 건물주가 전자 도어락을 설치해서 드나드는 것을 막은 것이었고. 그 뒤로는 안 보이 길래 이제 발길을 끊었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누가 그 안에 죽어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나를 보더니 형사 아저씨는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믿어주는 것 같았어. 내 어깨를 살며시 두드려 주시곤 혹시라도 나중에 더 기억나는 게 있으면 연락 달라고 명함 한 장을 주더라. 그 말을 끝으로 아저씨는 나갔고, 밖에 주차 되어있던 차량들은 빠르게 내게서 멀어져갔어. 술렁이던 주민들도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었지. 새삼 이 근처에 주민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에 살짝 놀랐어. 새벽엔 그렇게 개미새끼 한 마리 없는 주제에 말이야.
넋 놓고 밖을 보고 있는 내게 사장님은 얄팍하게도 ‘그럼, 수고해라.’ 라고 한 마디를 건네는 걸 끝으로 밖으로 나가셨지. 물론 편의점 특성상 문을 닫는 건 안 될 일이지만 그래도 상황이 이런 마당에 어쩜 저리 평소와 다를 게 없을까? 내심 어처구니가 없더라고.
결국 난 별 수 없이 그날도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어.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건 그 노숙자의 시신을 가져갔으니, 더 이상 이 건물 내에서 그 것을 볼일은 없을 거란 안심이었지.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어. 정확히 새벽 4시가 넘어가기 시작했을 때 난 또 듣고 말았지. 창고 바로 위로부터 ‘쿵쿵쿵’ 거리는 소리를….
이제는 무섭다 못해 짜증이 났어. 그까짓 여행이 뭐라고 그깟 여행 한번 가보겠다고 내가 이런 개 같은 일을 당해야 하는 건지 눈물이 나더라. 심지어 같이 가기로 한 여자 친구와 친구 녀석까지 전부 얄밉게 느껴지는 거야. 너무 화가 났던 나는 창고 안으로 들어가 대걸레 끝 부분으로 천정을 마구 치며 소리를 질렀어. 이 시발 좃 같은 새끼야! 뒈졌으면 곱게 갈 것이지 어디서 지랄이야! 시발!! 대충 이런 식으로 막 소리를 질렀던 것 같아. 매일 새벽에 우유를 사러 오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그런 내 모습에 놀라셨는지, 허겁지겁 도로 나가시더라. 그런데 그게 효과가 있던 건지 위에서 나는 소리는 돌연 뚝 하고 멈췄어. 지난번처럼 계단을 내려가는 듯 소리가 바뀐 것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뚝 그쳤어. 정말 다행이었지. 한편으론 그런 느낌도 들더라. 혼자 힘으로 악을 물리쳤다! 막 그런 영웅심? 자신감? 그런 거. 그렇지만 아무리그래도 계속 이곳에서 일할 마음은 없었어. 난 퇴근하기 무섭게 사장한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 했어. 더는 못하겠다고. 오늘부터 안 나가겠다고. 사장은 자기도 가게를 뺄 생각인데 지금 건물주와 계속 연락이 안 되서 못 그러고 있다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해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했지. 살인 사건이 난 마당에도 연락이 안 되는 건물주를 내가 언제 연락될 줄 알고 기다리겠어? 당연히 난 싫다고 하고 끊어버렸어.

그 이후 난 친구들과 예정대로 여행을 떠났어. 사장이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일한 만큼의 월급은 넣어 줬더라고. 나로썬 참으로 잘된 일이었지. 아무튼 그렇게 신나게 놀고 그 뒤로 그 죽은 노숙자에 관한 기억은 모조리 지우고 살고 있었어.

그런데….

오늘 오랜 만에 동창 놈들과 술자리를 가졌어. 정확히 1년만의 모임이었던지라 작년과 마찬가지로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셔버렸지. 덕분에 난 그때당시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지 뭐야.

하하. 정말이지, 이놈의 술이 문제라니깐? 설마 내가 사람을, 그것도 둘이나 죽이게 될 줄 알았겠어? 하하하. 사람이 걷다보면 어깨 좀 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건데, 그것도 술을 마셨는데 좀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그걸 가지고 다 늙은 새끼가 삿대질이나 하고 막 말이나 하고 있으니 제명을 지가 재촉한 거지. 바보같이. 하지만 덕분에 기분은 정말 캬하~ 최고였지. 하하하. 거기다 숨어서 벌벌 떨고 있던 그 노숙자 새끼는 정말 가관이었다고. 대가리를 솨 파이프로 후려치는 그 순간까지 어버버버하면서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꼬락서니가 오히려 좋았던 기분을 망쳐버렸다니까? 뭐 그래도 덕분에 뒷일은 순조롭게 풀렸지만 말이야. 뒤진 건물주를 아직도 실종자로 분류해놓질 않나, 건물주가 노숙자를 죽이고 도주했다질 않나, 건물자랑 노숙자 둘 다 일련의 정신병자 무리가 죽였다질 않나. 진짜 웃겨서 못 봐주겠지 뭐야. 경찰들 진짜 호구라니까? 내가 봤을 땐 과학수사니 뭐니 다 글러먹었어. 아니면 내가 너무 머리가 좋은 건가? 그래도 귀신이 되어서 나타난 건 진짜 제법 무서웠다고. 너한테만 하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오줌까지 조금 지렸다니까? 이, 내가 말이야. 그렇다고 너까지 그렇게 나타나진 말고. 알겠지? 하하하하!

자, 내 이야기는 이제 끝이야. 어때? 재미있었어? 그럼, 재미있어야지. 마지막 가는 길인데 재미라도 있었어야 덜 억울하잖아. 어라? 그런 표정은 짓지 말아줘. 증거인멸을 위해선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어차피 죽을 건데 이왕이면 즐겁게 가자. 뭐? 뭐라고? 야. 너 입에 테이프 때문에 뭐라는 지 잘 안 들려. 아! 알았다고? 너도 좋아 죽겠다고? 이제야 날 이해해 주는 구나! 좋아! 그럼, 간다?
하나~ 두울~ 세엣!!!!!

남자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손에 들린 쇠파이프로 손발이 결박된 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누군가의 머리통을 미친 듯이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콰직’
‘빠직’
‘뿌드득’
‘철퍽’

‘철퍽’

‘철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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