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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net view/T Horror

수상한 오피스텔












 

 
 
제가 아는 분이 대학 동기녀석과 서울 외곽의 어느 오피스텔에서 생활했을 때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소설식으로 엮은 것입니다.

비슷한 소재의 얘기도 많지만 표절은 아니므로 참고 바랍니다.

 

 

 

 

 


"째깍...째깍...째깍..."


어렵게 얻은 오피스텔에서의 첫날 밤이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알람시계의 초침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오는 너무나도 조용한 밤이다.

한쪽 벽면의 반 이상이 창으로 되어 있고,

 

반 복층 구조의 천장이 높은 오피스텔이라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동시에 주었다. 

이곳 주변은 유흥가가 밀집해 있어서 밤에도 소음이 심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그 곳과 한 블럭 떨어져 있어서 생각보다 굉장히 조용했다.

단지 단점이라면 내가 살고 있는 15층과 거의 같은 높이로 솟아있는 사무실 건물이

 

십여미터 앞에 있다는 것이다. 

 

 

불을 끄고 나와 내 친구인 준혁은 머리 뒤에 두 손을 깍지를 낀 자세로 누워서 달빛조차 

어둠에 묻혀버린 창밖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십수분이 지났을까 나는 슬슬 졸음이 몰려와 깍지를 풀고 몸을 옆으로 돌려 준혁을 향해 누웠다.

그 때 나를 의아하게 만든 것이 있었는데 거의 눈을 깜박이지 안고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듯한 준혁의 모습이었다.

 

 

그런 준혁의 표정을 나 또한 말없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런 어색한 상황을 깬 것은 준혁이었다.

자세도 풀지 않은 채 심지어 눈길조차 나에게 돌리지 않고 그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 이 오피스텔 싸게 들어왔다고 했지?"


"응"


"얼마나?"


"보증금 500에 월세 50인데, 5만원 깍아서 45에 들어왔어."


"아는 사람 통해서 들어온거냐?"


"아니. 그냥 근방의 부동산 중개소에 문의했어.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준혁은 나의 물음을 무시한 채 아무런 표정없의 그대로의 자세를 유지하고 다시 나에게 물었다.

 

 

 

"중개인이 별다른 안하디?"


"무슨 말?"


"............."


 

 


준혁은 여전히 나의 질문을 무시했다.

그리고는 혼자서 넋두리하듯 입을 열었다.

 

 

 

"말할 리가 없지......."


"무슨 소리야?"


"너 봤어?"


"뭘?"


 

 


나의 물음에 갑자기 준혁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창밖에 있는 저 형상 말이야."


 

 


준혁은 어둠속에 묻힌 창밖을 보고 있고, 나는 그런 준혁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준혁이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준혁의 번뜩거리는 눈빛과 긴장된 표정으로 봤을 때

 

심상치 않은 존재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옆으로 누워 천장을 향하고 있는 내 오른쪽 뺨이 싸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뭔데?"


"몰라....그냥 유리창 밖에 사람같은 게 서 있어."

 

 

 

나는 탁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무서움을 많이 타는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정말 두려워했다.

 

 

 

 

 


내가 다섯살 때 일이었다. 

엄마는 시장에서 투정부리는 내가 귀찮았는지 내가 잠든 사이 잠깐 장을 보러 나갔다.

그런데 엄마가 장을 보러 가자마자 나는 바로 잠에서 깨어버렸다.

엄마의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없는 집.

있어야 될 존재가 없어졌을 때의 두려움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다.

아무리 불러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갈수도 없었다.

내 키가 닿지 않는 문고리는 여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손이 닿는 손잡이 잠금장치는 여는 방법을 몰랐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엄청나게 울었다.

 

"쿵!! 쿵!! 쿵!!"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누군가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도 무서워 방으로 달려가 장롱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어둠속의 밀폐된 공간,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를 부르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

 


 

 


"너 겁먹었지?"

 

준혁의 물음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겁먹었다. 

내가 원래 겁이 많은 것도 있지만 준혁의 기이한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준혁이도 지금 나의 심정을 알고 있을거다.

준혁은 아주 가끔씩 귀신을 본다고 한다.

귀신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한다.

 

 

 

 

한 번은 둘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준혁이 수저로 찌개를 뜨는 자세를 하며 눈을 치켜든 채,

자꾸 내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검은 롱코트에 검은 중절모를 쓴 남자가

 

식당 내부의 기둥 뒤에 서서 반쯤 몸을 드러낸 채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획 돌려 준혁이 말한 곳을 쳐다 보았다.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준혁이 내게 힘 닿는데까지 성대의 진동을 억누른 숨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다.

 

"쳐다보지마!!!"

 

준혁의 놀란 외침에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식탁위에 놓인 찌개에 시선을 모았다.

내 눈의 초점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음을 알았는지 준혁이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를 찾는게 아냐...쳐다보지마"

 

그리고 잠시 후 만취한 상태에서 십여분간 계속 자신의 해병대시절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식당의 모든 소음을 자신의 목소리로 잠재워버린 50대의 한 아저씨가 준혁의 등 뒤에서 쓰러졌다.

한 수저 들어올린 찌개국물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내 손의 진동에 맞추어

 

여기저기 쏟아져 흘러내렸다.

나중에 그 정체 모를 존재에 대해 준혁에게 물었지만

 

준혁은 그냥 두려웠을 뿐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단지 그가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는 것 뿐이다.

 

 

 

"그래. 나 지금 겁먹었어. 여기서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그런 말하냐?"


어린아이 같이 울먹이는 듯한 나의 목소리를 들은 준혁은 내가 측은하게 생각되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나에게 돌려 입을 열었다.

 


"전에 중절모 쓴 사람 같지는 않아. 그냥 창 밖에 사람형상 같은 게 보였을 뿐이야. 신경쓰지마"


"뭐? 신경쓰지 말라고? 너같으면 신경이 안쓰이겠냐?"

 


준혁은 힐끔 내 얼굴 표정을 살피더니 깍지 낀 양손을 고정한 채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가잖아. 그래서 두려움이 없는거고..... 그냥 너도 모르는 체하면 돼."


"지금 니가 나한테 말해버렸잖아. 말해놓고서는 모르는 체하라니..."

 


내 말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준혁이 잠시 어금니를 깨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넌 친구잖아........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나도 너 만큼 두려워.

어쩌면 너보다 더 두려울지도 몰라.
누군가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나 혼자 미칠 것 같아."

 


준혁의 말에 나는 말없이 그의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그의 초점을 응시했다.


나는 겁쟁이인데.........

 

내가 준혁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의 소름끼치는 상황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강심장이기 때문인데....

용기있는 자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운데도 그것에 맞서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준혁의 모습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준혁의 눈동자가 많이 흔들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도 봐도 돼?"

 


그냥 고개를 돌려 볼 것이지, 나는 바보스럽게도 준혁의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바보스러운 질문을 아는지 준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창밖에 맞추었다.

어슴푸레 주변 상가 불빛의 기운이 느껴졌지만, 창 밖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저 어둠속에 무엇이 보인다는 건지.....

 

어쩌면 준혁은 머릿속의 허상을 현실에 비추고 있는 지도 모른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몸살기가 있어서 일찍 잠이 든 적이 있는데 누운지 십분도 안돼 가위에 눌리고 말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어나지 않으면 죽을것 같다는 공포감이 몰려와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아무 것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그런데 나를 더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장가 소리였다.

 

'잘 자라 우리 아가....앞 뜰과 뒷 동산에......"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의 자장가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내 가슴을 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떴다.

 

아니...눈만 뜰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곧 눈을 뜬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하얀 소복에 검고 긴 생머리를 늘여뜨린 낯선 여자가 내 옆에 앉아

 

손으로 내 가슴을 쓸고 있는 것이다.

발처럼 축 늘어진 검고 긴 생머리 속에 묻힌 얼굴 속에서 계속해서

 

그 소름끼치는 자장가가 흘러나왔다.

 

"달님은 영창으로...은구슬 금구슬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자장가가 이렇고 무섭고 혐오스러울 수가 있다니......

나를 깨운 건 엄마였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통나무처럼 굳은 몸으로 눈만 부릅뜨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여긴 것이다.

나는 얼른 주변을 돌아봤다.

그 낯선 여자는 온데간데 없고,

 

반 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결에 나부끼는 커튼이 내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실 TV에서 들려오는 자장가 소리.....

이 커튼이 내 가슴을 쓸고 있었고,

 

저 TV속의 자장가 소리가 내 심장을 조이고 있었다.

이럴 수가....

 

이 모든 게 내가 만든 허상이었다니.....

 

 

 

 


사람은 얼마든지 공포의 대상을 창조할 수도 있고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준혁이 지난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만의 방식으로 공포의 허상을 창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절모 사나이는 우연의 일치인가?

머리가 복잡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의 정리로 인해 나는 잠시동안 창 밖의 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준혁은 이런 나의 짧은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런데...너한테 이 걸 말하는 이유가 또 있어."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준혁을 향했다.


 

 

"창밖의 형상이 축 늘어져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어.....그리고......"


'아우....강아지...'

 


난 욕을 거의 안 한다.

 

그런데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나는 지금 준혁에게 욕을 하고 있다.

저 저주받은 듯한 주둥아리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나는 그 다음 말이 궁금했다.

 


"그...그리고?"


"자세히 보니까 창 밖이 아냐......창에 비친거야...지금 이 방이....."

 

 

 

 

준혁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나도 모르게 이불을 뒤집어 썼다.

이런 겁먹은 행동을 하는 나를 배려하지도 않은 채 준혁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보고 싶지 않은데......이건 진짜 기분 나쁘다.

저 사람이 지금 우리 머리 위에 매달려 있다는 건가?
그런데 왜 창을 통해서만 보이지? 신기하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 것도 모자라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누가 죽었나? 전의 입주자도 이 걸 보았나? 그럼 그 사람도 나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저 사람이 전의 입주자일까? 아니면......"


"그만 해!!!!"

 

 


목이 메이는 숨소리로 나는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준혁이와 지내오면서 오늘처럼 무서운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금이 저리고, 등골이 모두 얼어붙는 느낌이다.


 


"..준..준혁아..그만 해..."


 


나의 울먹이는 듯한 간절한 목소리에 준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준혁아...나 오늘 이 집에서 첫날밤이다. 너 진짜 왜 그러냐?"


 


어린 아이처럼 이불 속에서 눈을 질끈 감은 채 준혁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는 서로의 대화를 멈춘 채,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듯 했다.

그리고 준혁의 대답이 없자 잠시 동안 죽음같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무섭다. 오히려 더 무섭다.


왜 준혁이가 가만히 있지?


이 자식...또 나를 겁먹일려고 하는건가?

아니면 내가 그만하라니까 그냥 있는건가?

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서서히 열었다.

그리고 방안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 공간을 만든 이불을 머리로부터 조금씩 걷어냈다.


이불의 가장자리가 내 머리결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불의 끝자락이 내 눈동자를 지나치자, 준혁이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창밖을 향하던 시선은 온데간데 없고,

 

준혁은 파리한 어둠속에서 나를 향해 무표정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면........"


"아니면...뭐...뭐?"


"전의 입주자가 아니면.......그 중절모의 사나이....."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준혁을 발로 힘껏 밀어냈다.


 


"개자식!! 그냥 꺼져버려!!"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준혁이 당황한 듯 보였다.

준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 안의 불을 모두 켰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준혁이 발끝에 닿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허공에 발길질을 해댔다.

이불을 온몸에 꽁꽁 둘러싼 채로....


준혁은 멀찌감치 서서 허리에 두 손을 갖다대고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 아니다. 이 집에 뭔가 있어....보지 못하는 니가 오히려 속이 편할 수도 있다."


"가버려!! 개자식아!!"


"가버리라구? 내가 가면 너 혼자 오늘 밤을 보낼거냐? 안될 걸? 
분명히 내가 나가면 넌 오늘 여기서 못자고 밤새 밖을 돌아다니며 서성이겠지. 안 그래?
친구니까 말해주는 거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말도 꺼내지 않아.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든...."


"내가 뻔히 겁내 하는 것 알면서도 그런 말 해주는게 친구냐?"


"너도 이겨내야 돼. 언제까지 어린 아이처럼 굴거냐? 나만 이런 걸 본다고 생각해?
너도 언젠가 나와 같이 귀신을 볼 수 있을 날이 올지 몰라. 그 땐 그냥 창밖으로 뛰어내릴거냐?"


"젠장. 미친 놈 같으니라구. 니가 보는 게 귀신인지 아닌지 알게 뭐야?"


 


평소 답지 않게 내 말투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준혁은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귀신이든 아니든 이 집엔 뭔가가 있어. 그건 확실해. 
오늘은 그냥 나하고 같이 자고, 내일 전 입주자를 만나보자.
부동산 직원들은 말해줄 것 같지 않고..."

 


그제서야 나는 우스꽝스러운 발길질을 멈추고, 조용히 몸을 바로 눕혔다.

1시간도 채 못잔 것 같았다.

날이 밝도록 뜬 눈으로 지샌 나는 밝은 햇빛 아래서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았다.

학교 수업을 빼먹고 우리 둘은 관리사무실로 내려갔다.

 

 

"저기요, 903호 입주자인데요, 전 입주자 연락처 좀 알 수 있어요?"


 


준혁의 요청에 관리실 여직원이 우리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건 알려드리지 못하는데..... 왜요?"


"옷장 구석에 반지함을 놓고 가셨더라구요. 그걸 돌려드릴려구요."

 

준혁은 아무런 얼굴의 표정 변화없이 거짓말을 내뱉았다.

어쩌면 어젯밤 나에게도 저렇게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요?"


"비싼 기념반지 같은데 빨리 돌려드리고 싶어요."

 

준혁의 선한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거짓말을 의심하지 않는지

 

여직원은 시큰둥한 표정을 풀고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직원은 두꺼운 장부하나를 꺼내고 이리저리 몇 번 뒤지더니 번호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011에 xxx-xxxx요. 그런데 이 분은 입주한 지 3개월도 안돼 집을 비우셨네요.

단기 입주자였나봐요."


"단기 입주자요?"


"그거 있잖아요. 보증금하고 계약기간 없이 월세 더 내고 그냥 달 수로 끊어서 사는것 말이예요."


"아...그게 단기 입주자군요."


"반지함을 놓고 갈 정도로 급하게 이사가셨나 봐요."

 


번호를 받아 적은 준혁은 관리실을 나와 그 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몇 번의 벨이 울리자 낯선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준혁의 휴대폰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저기...xx오피스텔 903호 입주자인데요."


"무슨 일이시죠? 전 부동산에 다 맡겨서 나왔는데요."


"저....그게 아니라 혹시 사시면서 무슨 일 없었나 해서요."


"무슨 일이요?"


"그냥...사시면서 집 안에서 이상한 일 겪지 않으셨나 해서요.."


"..........."

 

 

준혁의 질문에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듣고 계세요?"

 


준혁의 물음에 그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네.....그 쪽도 보셨군요."


"그렇군요. 그 쪽도 보신거군요."


"xx대 학생인가요?"


"네."


"저는 xx학과 대학원생인데 수업 없으면 잠시 시간내서 만날까요?"

 


낯선 남자의 제안에 준혁은 선뜻 응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 학생회관 앞에 잔디밭 벤치에서 만나죠."


"좋아요."

 


우리가 만난 낯선 그 남자는 28세의 키가 큰 건장한 청년이었다.

깔끔하게 빗어넘긴 머리만 보면 학생이라기보다는 회사원에 가까워 보였다. 

캔커피를 우리에게 하나씩 건네 준 남자는 우리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느냥

 

말주머니를 풀기 시작했다.

 

"전 원래 이곳 학생이 아니라 지방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을 이 곳으로 왔죠.
그 오피스텔에 들어 간 건 5개월 전입니다.
목돈이 없어서 단기 계약으로 우선 입주를 했죠.
전 원래 추위에 강해서 웬만한 겨울 날씨에도 창문을 열고 사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그 오피스텔은 밤만 되면 추운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난방을 하고, 창문을 모두 닫고 살았죠.
그런데...."

 

남자는 캔음료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추위가 가시질 않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어디선가 한기가 자꾸 몰려오는거예요.
그런데 그 한기의 방향을 보니까. 
창쪽이 아닌 복층 다락방쪽에서 한기가 몰려오는 겁니다.
다락방 구조 아시다시피 계단으로 올라가면 앉아서 뭔가를 해야 하는 높이 밖에 안되잖아요.
게다가 밀폐되어있고.... 그런데 그 곳에서 한기가 몰려온다는게 이상했죠.
저는 그 곳에 이불을 가져다 쌓아놓고, 그 한기를 막아보려고 했죠.
그런데 그 한기가 더더욱 기분 나쁜 건 몰려오는 주기가 있다는 겁니다."

 

"주기요?"

 

"네. 마치.....

누군가가 숨을 쉬듯 주기적으로 차가운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 있죠.
혼자 있는게 익숙한 저는 웬만한 일에는 겁을 먹거나 그러진 않는데

그 집은 솔직히 좀 이상했어요."

 


남자가 캔 음료를 거의 바닥낼 때까지 우리는 단 한모금의 음료도 마시지 못하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제가 처음으로 놀란 일이 있었죠.
낮에 청소를 하려고 다락방 이불을 정리하는데 그 이불에 무언가에 눌린 자국이 있는거예요.
누가 기대고 누운 흔적 있죠?
소름이 쫘악 끼쳤습니다.
귀신이든 사람이든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이 곳에 있거나

아니면 다녀갔다는 생각에 온몸이 굳는 듯 했죠.
저는 미친 듯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서랍, 옷장, 장롱 등을 열어 젖혔습니다.
없어진 무언가를 찾는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솔직히.....누군가가 이 곳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 모르다는 생각이 더 앞섰기 때문이죠. 
경비실에 CCTV라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없어진 물건도 없고,

그것 외에는 누가 들어왔다는 흔적이 전혀 없는터라

괜한 웃음거리 만들까봐 쉽사리 그러지도 못했죠.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데,

자꾸 밤마다 그 기분나쁜 한기가 떠올라 찝찝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죠."

 


그는 갈증이 몰려오는지 거의 비어버린 캔을 연거푸 마시는 흉내를 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후로 며칠동안 아무 일이 없길래 그냥 그렇게 그 일이 잊혀지나 싶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아시다시피 거기 오피스텔 화장실이 조금 좁아요. 
문을 닫아야만 변기에 앉을 수 있는 구조잖아요.
그 날은 밤도 아니고 아침이었어요. 
저는 큰 일을 볼려고 문을 닫고 일을 봤죠.
신문을 펼쳐들고 앉아 있는데........ 
그런 소리 알아요?"

 

 

남자의 물음에 우리는 치켜든 눈썹으로 대답했다.

 


"맨발로 장판지 위를 걸을 때 나는 저벅거리는 소리....."


 


남자의 말을 듣자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가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와....정말 소름이 돋더라구요. 
누군가가 제 거실방을 아주 느린 걸음으로 저벅거리며 돌아다니는 거예요.
현관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소리는 전혀 들은 적이 없는데......
저는 순간 화장실 수납장에 있는 유리로 된 로션병을 오른손으로 감아 쥐었어요.
그리고 천천히 변기에서 일어나 조용히 화장실문 손잡이를 돌렸죠.
휴대폰이라도 들고 들어왔으면 경찰에 신고라도 했을텐데....

휴대폰이 거실방에 있는지라 미칠 것 같았죠.
화장실 문을 거의 반 이상 열었는데도 그 저벅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거예요."

 

남자는 다시 갈증이 몰려오는지 비어버린 캔을 연거푸 마시는 시늉을 냈다.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캔커피를 그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후........."


 


남자는 긴 한숨을 내뱉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놈의 저벅거리는 소리...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얼어붙는 기분이예요.
그런데 그 소리가 복층 계단으로 향하는 거예요. 
현관이나 화장실문에서는 계단쪽이 보이지 않잖아요.
단지 그 복층 다락방이 머리위에 있다는 뿐이지....
다락방은 바닥은 카페트 재질이라 걷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죠.
저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바로 옆의 현관문을 열고 추리닝 차림으로 냅다 튀었죠.
그리고 경비실로 갔습니다.
아저씨를 한참을 설득해서 복도의 CCTV를 봤죠.
한시간 전 것부터 거의 16배속 재생으로 돌리는데,

제가 있는 호실에는 아무도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츄리닝 차림으로 달려나오는 제 모습만 찍혀 있었구요.
저는 아저씨를 다시 설득해서 제 방으로 동행했죠.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남자는 준혁이 건네 준 캔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전방을 잠시동안 주시하더니 고개를 돌려 우리에게 물었다.


 


"그 쪽은 뭘 본거죠?"


 


그의 물음에 준혁이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창밖이요. 또렸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어둠속에서 창밖에 사람이 보였어요. 
처음엔 창밖에 나타난 귀신같은 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방안이 비친거였어요."


"헐...누구였죠? 남자인가요? 아니면....여자? 혹시..어린애? "

 

그도 놀라운지 눈썹을 치켜들며 준혁에게 물었다.

 

"아뇨.. 모르겠어요. 그냥 검은 형체가 천장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흔들리는거예요."


"목매단 것처럼요?"


"모르겠어요. 그냥 상반신 중간부터 발끝까지만 보였어요.
그런데 그 뒤로 집을 나가신거예요?"

 

준혁의 물음에 남자는 다시 시선을 전방으로 향했다.

 

"아뇨...집에서 전세금을 마련할때까지는 거기서 당분간 살았어야 했어요.
무서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대신 틈만 나면 연구실 동료들과 친해진 학부생들을 집에 불러서 같이 잤어요.
나이 먹고 그러는게 우습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일이 일어났죠.
입주한 지 두 달을 좀 넘겼을 때였어요.
그 쪽과 거의 비슷한 일이예요."

 

남자는 숨을 한 번 몰아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날은 연구실에서 밤샘을 하고, 대낮에 집에 들어와서 잠에 골아떨어졌죠.
그리고 잠에서 깬 건 저녁 6시쯤이었어요.
그런데 일어나보니 이상한거예요.
베개가 흥건게 젖어 있는 것 있죠. 
땀은 아니고 제가 엄청난 양의 침을 흘리고 잔거예요.
저는 원래 바로 누워서 자기 때문에 침을 흘리는 일이 없어요.
그런데 베개의 3분의 1이상이 젖어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침을 흘린거예요.
기분이 이상했어요. 
내가 내 자신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냥 누군가가 나와 같이 잠든 것 같다는 묘한 기분.......
그런데 결정적인 일은 그 날 밤에 일어났어요.
밤 9시가 조금 넘어갔을 때였어요.
피곤기가 가시지 않아서 저는 리포트 작성 대신에 영화 한 편을 다운받아 보려고 했죠.
그 때 불을끄지 말았어야

공포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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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수상한 오피스텔

아리가리똥 2018.04.13 조회 481 댓글 0 추천 1







 

 

 

제가 아는 분이 대학 동기녀석과 서울 외곽의 어느 오피스텔에서 생활했을 때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소설식으로 엮은 것입니다.

비슷한 소재의 얘기도 많지만 표절은 아니므로 참고 바랍니다.

 

 

 

 

 


"째깍...째깍...째깍..."


어렵게 얻은 오피스텔에서의 첫날 밤이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알람시계의 초침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오는 너무나도 조용한 밤이다.

한쪽 벽면의 반 이상이 창으로 되어 있고,

 

반 복층 구조의 천장이 높은 오피스텔이라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동시에 주었다. 

이곳 주변은 유흥가가 밀집해 있어서 밤에도 소음이 심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그 곳과 한 블럭 떨어져 있어서 생각보다 굉장히 조용했다.

단지 단점이라면 내가 살고 있는 15층과 거의 같은 높이로 솟아있는 사무실 건물이

 

십여미터 앞에 있다는 것이다. 

 

 

불을 끄고 나와 내 친구인 준혁은 머리 뒤에 두 손을 깍지를 낀 자세로 누워서 달빛조차 

어둠에 묻혀버린 창밖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십수분이 지났을까 나는 슬슬 졸음이 몰려와 깍지를 풀고 몸을 옆으로 돌려 준혁을 향해 누웠다.

그 때 나를 의아하게 만든 것이 있었는데 거의 눈을 깜박이지 안고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듯한 준혁의 모습이었다.

 

 

그런 준혁의 표정을 나 또한 말없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런 어색한 상황을 깬 것은 준혁이었다.

자세도 풀지 않은 채 심지어 눈길조차 나에게 돌리지 않고 그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 이 오피스텔 싸게 들어왔다고 했지?"


"응"


"얼마나?"


"보증금 500에 월세 50인데, 5만원 깍아서 45에 들어왔어."


"아는 사람 통해서 들어온거냐?"


"아니. 그냥 근방의 부동산 중개소에 문의했어.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준혁은 나의 물음을 무시한 채 아무런 표정없의 그대로의 자세를 유지하고 다시 나에게 물었다.

 

 

 

"중개인이 별다른 안하디?"


"무슨 말?"


"............."


 

 


준혁은 여전히 나의 질문을 무시했다.

그리고는 혼자서 넋두리하듯 입을 열었다.

 

 

 

"말할 리가 없지......."


"무슨 소리야?"


"너 봤어?"


"뭘?"


 

 


나의 물음에 갑자기 준혁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창밖에 있는 저 형상 말이야."


 

 


준혁은 어둠속에 묻힌 창밖을 보고 있고, 나는 그런 준혁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준혁이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준혁의 번뜩거리는 눈빛과 긴장된 표정으로 봤을 때

 

심상치 않은 존재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옆으로 누워 천장을 향하고 있는 내 오른쪽 뺨이 싸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뭔데?"


"몰라....그냥 유리창 밖에 사람같은 게 서 있어."

 

 

 

나는 탁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무서움을 많이 타는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정말 두려워했다.

 

 

 

 

 


내가 다섯살 때 일이었다. 

엄마는 시장에서 투정부리는 내가 귀찮았는지 내가 잠든 사이 잠깐 장을 보러 나갔다.

그런데 엄마가 장을 보러 가자마자 나는 바로 잠에서 깨어버렸다.

엄마의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없는 집.

있어야 될 존재가 없어졌을 때의 두려움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다.

아무리 불러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갈수도 없었다.

내 키가 닿지 않는 문고리는 여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손이 닿는 손잡이 잠금장치는 여는 방법을 몰랐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엄청나게 울었다.

 

"쿵!! 쿵!! 쿵!!"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누군가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도 무서워 방으로 달려가 장롱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어둠속의 밀폐된 공간,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를 부르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

 


 

 


"너 겁먹었지?"

 

준혁의 물음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겁먹었다. 

내가 원래 겁이 많은 것도 있지만 준혁의 기이한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준혁이도 지금 나의 심정을 알고 있을거다.

준혁은 아주 가끔씩 귀신을 본다고 한다.

귀신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한다.

 

 

 

 

한 번은 둘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준혁이 수저로 찌개를 뜨는 자세를 하며 눈을 치켜든 채,

자꾸 내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검은 롱코트에 검은 중절모를 쓴 남자가

 

식당 내부의 기둥 뒤에 서서 반쯤 몸을 드러낸 채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획 돌려 준혁이 말한 곳을 쳐다 보았다.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준혁이 내게 힘 닿는데까지 성대의 진동을 억누른 숨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다.

 

"쳐다보지마!!!"

 

준혁의 놀란 외침에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식탁위에 놓인 찌개에 시선을 모았다.

내 눈의 초점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음을 알았는지 준혁이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를 찾는게 아냐...쳐다보지마"

 

그리고 잠시 후 만취한 상태에서 십여분간 계속 자신의 해병대시절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식당의 모든 소음을 자신의 목소리로 잠재워버린 50대의 한 아저씨가 준혁의 등 뒤에서 쓰러졌다.

한 수저 들어올린 찌개국물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내 손의 진동에 맞추어

 

여기저기 쏟아져 흘러내렸다.

나중에 그 정체 모를 존재에 대해 준혁에게 물었지만

 

준혁은 그냥 두려웠을 뿐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단지 그가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는 것 뿐이다.

 

 

 

"그래. 나 지금 겁먹었어. 여기서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그런 말하냐?"


어린아이 같이 울먹이는 듯한 나의 목소리를 들은 준혁은 내가 측은하게 생각되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나에게 돌려 입을 열었다.

 


"전에 중절모 쓴 사람 같지는 않아. 그냥 창 밖에 사람형상 같은 게 보였을 뿐이야. 신경쓰지마"


"뭐? 신경쓰지 말라고? 너같으면 신경이 안쓰이겠냐?"

 


준혁은 힐끔 내 얼굴 표정을 살피더니 깍지 낀 양손을 고정한 채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가잖아. 그래서 두려움이 없는거고..... 그냥 너도 모르는 체하면 돼."


"지금 니가 나한테 말해버렸잖아. 말해놓고서는 모르는 체하라니..."

 


내 말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준혁이 잠시 어금니를 깨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넌 친구잖아........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나도 너 만큼 두려워.

어쩌면 너보다 더 두려울지도 몰라.
누군가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나 혼자 미칠 것 같아."

 


준혁의 말에 나는 말없이 그의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그의 초점을 응시했다.


나는 겁쟁이인데.........

 

내가 준혁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의 소름끼치는 상황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강심장이기 때문인데....

용기있는 자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운데도 그것에 맞서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준혁의 모습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준혁의 눈동자가 많이 흔들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도 봐도 돼?"

 


그냥 고개를 돌려 볼 것이지, 나는 바보스럽게도 준혁의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바보스러운 질문을 아는지 준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창밖에 맞추었다.

어슴푸레 주변 상가 불빛의 기운이 느껴졌지만, 창 밖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저 어둠속에 무엇이 보인다는 건지.....

 

어쩌면 준혁은 머릿속의 허상을 현실에 비추고 있는 지도 모른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몸살기가 있어서 일찍 잠이 든 적이 있는데 누운지 십분도 안돼 가위에 눌리고 말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어나지 않으면 죽을것 같다는 공포감이 몰려와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아무 것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그런데 나를 더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장가 소리였다.

 

'잘 자라 우리 아가....앞 뜰과 뒷 동산에......"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의 자장가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내 가슴을 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떴다.

 

아니...눈만 뜰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곧 눈을 뜬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하얀 소복에 검고 긴 생머리를 늘여뜨린 낯선 여자가 내 옆에 앉아

 

손으로 내 가슴을 쓸고 있는 것이다.

발처럼 축 늘어진 검고 긴 생머리 속에 묻힌 얼굴 속에서 계속해서

 

그 소름끼치는 자장가가 흘러나왔다.

 

"달님은 영창으로...은구슬 금구슬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자장가가 이렇고 무섭고 혐오스러울 수가 있다니......

나를 깨운 건 엄마였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통나무처럼 굳은 몸으로 눈만 부릅뜨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여긴 것이다.

나는 얼른 주변을 돌아봤다.

그 낯선 여자는 온데간데 없고,

 

반 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결에 나부끼는 커튼이 내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실 TV에서 들려오는 자장가 소리.....

이 커튼이 내 가슴을 쓸고 있었고,

 

저 TV속의 자장가 소리가 내 심장을 조이고 있었다.

이럴 수가....

 

이 모든 게 내가 만든 허상이었다니.....

 

 

 

 


사람은 얼마든지 공포의 대상을 창조할 수도 있고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준혁이 지난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만의 방식으로 공포의 허상을 창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절모 사나이는 우연의 일치인가?

머리가 복잡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의 정리로 인해 나는 잠시동안 창 밖의 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준혁은 이런 나의 짧은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런데...너한테 이 걸 말하는 이유가 또 있어."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준혁을 향했다.


 

 

"창밖의 형상이 축 늘어져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어.....그리고......"


'아우....강아지...'

 


난 욕을 거의 안 한다.

 

그런데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나는 지금 준혁에게 욕을 하고 있다.

저 저주받은 듯한 주둥아리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나는 그 다음 말이 궁금했다.

 


"그...그리고?"


"자세히 보니까 창 밖이 아냐......창에 비친거야...지금 이 방이....."

 

 

 

 

준혁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나도 모르게 이불을 뒤집어 썼다.

이런 겁먹은 행동을 하는 나를 배려하지도 않은 채 준혁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보고 싶지 않은데......이건 진짜 기분 나쁘다.

저 사람이 지금 우리 머리 위에 매달려 있다는 건가?
그런데 왜 창을 통해서만 보이지? 신기하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 것도 모자라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누가 죽었나? 전의 입주자도 이 걸 보았나? 그럼 그 사람도 나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저 사람이 전의 입주자일까? 아니면......"


"그만 해!!!!"

 

 


목이 메이는 숨소리로 나는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준혁이와 지내오면서 오늘처럼 무서운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금이 저리고, 등골이 모두 얼어붙는 느낌이다.


 


"..준..준혁아..그만 해..."


 


나의 울먹이는 듯한 간절한 목소리에 준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준혁아...나 오늘 이 집에서 첫날밤이다. 너 진짜 왜 그러냐?"


 


어린 아이처럼 이불 속에서 눈을 질끈 감은 채 준혁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는 서로의 대화를 멈춘 채,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듯 했다.

그리고 준혁의 대답이 없자 잠시 동안 죽음같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무섭다. 오히려 더 무섭다.


왜 준혁이가 가만히 있지?


이 자식...또 나를 겁먹일려고 하는건가?

아니면 내가 그만하라니까 그냥 있는건가?

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서서히 열었다.

그리고 방안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 공간을 만든 이불을 머리로부터 조금씩 걷어냈다.


이불의 가장자리가 내 머리결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불의 끝자락이 내 눈동자를 지나치자, 준혁이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창밖을 향하던 시선은 온데간데 없고,

 

준혁은 파리한 어둠속에서 나를 향해 무표정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면........"


"아니면...뭐...뭐?"


"전의 입주자가 아니면.......그 중절모의 사나이....."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준혁을 발로 힘껏 밀어냈다.


 


"개자식!! 그냥 꺼져버려!!"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준혁이 당황한 듯 보였다.

준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 안의 불을 모두 켰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준혁이 발끝에 닿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허공에 발길질을 해댔다.

이불을 온몸에 꽁꽁 둘러싼 채로....


준혁은 멀찌감치 서서 허리에 두 손을 갖다대고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 아니다. 이 집에 뭔가 있어....보지 못하는 니가 오히려 속이 편할 수도 있다."


"가버려!! 개자식아!!"


"가버리라구? 내가 가면 너 혼자 오늘 밤을 보낼거냐? 안될 걸? 
분명히 내가 나가면 넌 오늘 여기서 못자고 밤새 밖을 돌아다니며 서성이겠지. 안 그래?
친구니까 말해주는 거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말도 꺼내지 않아.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든...."


"내가 뻔히 겁내 하는 것 알면서도 그런 말 해주는게 친구냐?"


"너도 이겨내야 돼. 언제까지 어린 아이처럼 굴거냐? 나만 이런 걸 본다고 생각해?
너도 언젠가 나와 같이 귀신을 볼 수 있을 날이 올지 몰라. 그 땐 그냥 창밖으로 뛰어내릴거냐?"


"젠장. 미친 놈 같으니라구. 니가 보는 게 귀신인지 아닌지 알게 뭐야?"


 


평소 답지 않게 내 말투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준혁은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귀신이든 아니든 이 집엔 뭔가가 있어. 그건 확실해. 
오늘은 그냥 나하고 같이 자고, 내일 전 입주자를 만나보자.
부동산 직원들은 말해줄 것 같지 않고..."

 


그제서야 나는 우스꽝스러운 발길질을 멈추고, 조용히 몸을 바로 눕혔다.

1시간도 채 못잔 것 같았다.

날이 밝도록 뜬 눈으로 지샌 나는 밝은 햇빛 아래서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았다.

학교 수업을 빼먹고 우리 둘은 관리사무실로 내려갔다.

 

 

"저기요, 903호 입주자인데요, 전 입주자 연락처 좀 알 수 있어요?"


 


준혁의 요청에 관리실 여직원이 우리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건 알려드리지 못하는데..... 왜요?"


"옷장 구석에 반지함을 놓고 가셨더라구요. 그걸 돌려드릴려구요."

 

준혁은 아무런 얼굴의 표정 변화없이 거짓말을 내뱉았다.

어쩌면 어젯밤 나에게도 저렇게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요?"


"비싼 기념반지 같은데 빨리 돌려드리고 싶어요."

 

준혁의 선한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거짓말을 의심하지 않는지

 

여직원은 시큰둥한 표정을 풀고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직원은 두꺼운 장부하나를 꺼내고 이리저리 몇 번 뒤지더니 번호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011에 xxx-xxxx요. 그런데 이 분은 입주한 지 3개월도 안돼 집을 비우셨네요.

단기 입주자였나봐요."


"단기 입주자요?"


"그거 있잖아요. 보증금하고 계약기간 없이 월세 더 내고 그냥 달 수로 끊어서 사는것 말이예요."


"아...그게 단기 입주자군요."


"반지함을 놓고 갈 정도로 급하게 이사가셨나 봐요."

 


번호를 받아 적은 준혁은 관리실을 나와 그 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몇 번의 벨이 울리자 낯선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준혁의 휴대폰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저기...xx오피스텔 903호 입주자인데요."


"무슨 일이시죠? 전 부동산에 다 맡겨서 나왔는데요."


"저....그게 아니라 혹시 사시면서 무슨 일 없었나 해서요."


"무슨 일이요?"


"그냥...사시면서 집 안에서 이상한 일 겪지 않으셨나 해서요.."


"..........."

 

 

준혁의 질문에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듣고 계세요?"

 


준혁의 물음에 그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네.....그 쪽도 보셨군요."


"그렇군요. 그 쪽도 보신거군요."


"xx대 학생인가요?"


"네."


"저는 xx학과 대학원생인데 수업 없으면 잠시 시간내서 만날까요?"

 


낯선 남자의 제안에 준혁은 선뜻 응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 학생회관 앞에 잔디밭 벤치에서 만나죠."


"좋아요."

 


우리가 만난 낯선 그 남자는 28세의 키가 큰 건장한 청년이었다.

깔끔하게 빗어넘긴 머리만 보면 학생이라기보다는 회사원에 가까워 보였다. 

캔커피를 우리에게 하나씩 건네 준 남자는 우리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느냥

 

말주머니를 풀기 시작했다.

 

"전 원래 이곳 학생이 아니라 지방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을 이 곳으로 왔죠.
그 오피스텔에 들어 간 건 5개월 전입니다.
목돈이 없어서 단기 계약으로 우선 입주를 했죠.
전 원래 추위에 강해서 웬만한 겨울 날씨에도 창문을 열고 사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그 오피스텔은 밤만 되면 추운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난방을 하고, 창문을 모두 닫고 살았죠.
그런데...."

 

남자는 캔음료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추위가 가시질 않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어디선가 한기가 자꾸 몰려오는거예요.
그런데 그 한기의 방향을 보니까. 
창쪽이 아닌 복층 다락방쪽에서 한기가 몰려오는 겁니다.
다락방 구조 아시다시피 계단으로 올라가면 앉아서 뭔가를 해야 하는 높이 밖에 안되잖아요.
게다가 밀폐되어있고.... 그런데 그 곳에서 한기가 몰려온다는게 이상했죠.
저는 그 곳에 이불을 가져다 쌓아놓고, 그 한기를 막아보려고 했죠.
그런데 그 한기가 더더욱 기분 나쁜 건 몰려오는 주기가 있다는 겁니다."

 

"주기요?"

 

"네. 마치.....

누군가가 숨을 쉬듯 주기적으로 차가운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 있죠.
혼자 있는게 익숙한 저는 웬만한 일에는 겁을 먹거나 그러진 않는데

그 집은 솔직히 좀 이상했어요."

 


남자가 캔 음료를 거의 바닥낼 때까지 우리는 단 한모금의 음료도 마시지 못하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제가 처음으로 놀란 일이 있었죠.
낮에 청소를 하려고 다락방 이불을 정리하는데 그 이불에 무언가에 눌린 자국이 있는거예요.
누가 기대고 누운 흔적 있죠?
소름이 쫘악 끼쳤습니다.
귀신이든 사람이든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이 곳에 있거나

아니면 다녀갔다는 생각에 온몸이 굳는 듯 했죠.
저는 미친 듯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서랍, 옷장, 장롱 등을 열어 젖혔습니다.
없어진 무언가를 찾는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솔직히.....누군가가 이 곳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 모르다는 생각이 더 앞섰기 때문이죠. 
경비실에 CCTV라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없어진 물건도 없고,

그것 외에는 누가 들어왔다는 흔적이 전혀 없는터라

괜한 웃음거리 만들까봐 쉽사리 그러지도 못했죠.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데,

자꾸 밤마다 그 기분나쁜 한기가 떠올라 찝찝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죠."

 


그는 갈증이 몰려오는지 거의 비어버린 캔을 연거푸 마시는 흉내를 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후로 며칠동안 아무 일이 없길래 그냥 그렇게 그 일이 잊혀지나 싶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아시다시피 거기 오피스텔 화장실이 조금 좁아요. 
문을 닫아야만 변기에 앉을 수 있는 구조잖아요.
그 날은 밤도 아니고 아침이었어요. 
저는 큰 일을 볼려고 문을 닫고 일을 봤죠.
신문을 펼쳐들고 앉아 있는데........ 
그런 소리 알아요?"

 

 

남자의 물음에 우리는 치켜든 눈썹으로 대답했다.

 


"맨발로 장판지 위를 걸을 때 나는 저벅거리는 소리....."


 


남자의 말을 듣자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가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와....정말 소름이 돋더라구요. 
누군가가 제 거실방을 아주 느린 걸음으로 저벅거리며 돌아다니는 거예요.
현관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소리는 전혀 들은 적이 없는데......
저는 순간 화장실 수납장에 있는 유리로 된 로션병을 오른손으로 감아 쥐었어요.
그리고 천천히 변기에서 일어나 조용히 화장실문 손잡이를 돌렸죠.
휴대폰이라도 들고 들어왔으면 경찰에 신고라도 했을텐데....

휴대폰이 거실방에 있는지라 미칠 것 같았죠.
화장실 문을 거의 반 이상 열었는데도 그 저벅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거예요."

 

남자는 다시 갈증이 몰려오는지 비어버린 캔을 연거푸 마시는 시늉을 냈다.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캔커피를 그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후........."


 


남자는 긴 한숨을 내뱉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놈의 저벅거리는 소리...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얼어붙는 기분이예요.
그런데 그 소리가 복층 계단으로 향하는 거예요. 
현관이나 화장실문에서는 계단쪽이 보이지 않잖아요.
단지 그 복층 다락방이 머리위에 있다는 뿐이지....
다락방은 바닥은 카페트 재질이라 걷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죠.
저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바로 옆의 현관문을 열고 추리닝 차림으로 냅다 튀었죠.
그리고 경비실로 갔습니다.
아저씨를 한참을 설득해서 복도의 CCTV를 봤죠.
한시간 전 것부터 거의 16배속 재생으로 돌리는데,

제가 있는 호실에는 아무도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츄리닝 차림으로 달려나오는 제 모습만 찍혀 있었구요.
저는 아저씨를 다시 설득해서 제 방으로 동행했죠.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남자는 준혁이 건네 준 캔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전방을 잠시동안 주시하더니 고개를 돌려 우리에게 물었다.


 


"그 쪽은 뭘 본거죠?"


 


그의 물음에 준혁이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창밖이요. 또렸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어둠속에서 창밖에 사람이 보였어요. 
처음엔 창밖에 나타난 귀신같은 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방안이 비친거였어요."


"헐...누구였죠? 남자인가요? 아니면....여자? 혹시..어린애? "

 

그도 놀라운지 눈썹을 치켜들며 준혁에게 물었다.

 

"아뇨.. 모르겠어요. 그냥 검은 형체가 천장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흔들리는거예요."


"목매단 것처럼요?"


"모르겠어요. 그냥 상반신 중간부터 발끝까지만 보였어요.
그런데 그 뒤로 집을 나가신거예요?"

 

준혁의 물음에 남자는 다시 시선을 전방으로 향했다.

 

"아뇨...집에서 전세금을 마련할때까지는 거기서 당분간 살았어야 했어요.
무서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대신 틈만 나면 연구실 동료들과 친해진 학부생들을 집에 불러서 같이 잤어요.
나이 먹고 그러는게 우습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일이 일어났죠.
입주한 지 두 달을 좀 넘겼을 때였어요.
그 쪽과 거의 비슷한 일이예요."

 

남자는 숨을 한 번 몰아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날은 연구실에서 밤샘을 하고, 대낮에 집에 들어와서 잠에 골아떨어졌죠.
그리고 잠에서 깬 건 저녁 6시쯤이었어요.
그런데 일어나보니 이상한거예요.
베개가 흥건게 젖어 있는 것 있죠. 
땀은 아니고 제가 엄청난 양의 침을 흘리고 잔거예요.
저는 원래 바로 누워서 자기 때문에 침을 흘리는 일이 없어요.
그런데 베개의 3분의 1이상이 젖어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침을 흘린거예요.
기분이 이상했어요. 
내가 내 자신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냥 누군가가 나와 같이 잠든 것 같다는 묘한 기분.......
그런데 결정적인 일은 그 날 밤에 일어났어요.
밤 9시가 조금 넘어갔을 때였어요.
피곤기가 가시지 않아서 저는 리포트 작성 대신에 영화 한 편을 다운받아 보려고 했죠.
그 때 불을끄지 말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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